칼럼

밥값 하는 의회

제주피스 2023. 4. 11. 16:16

 

얼마 전 한 도의원이 자신의 SNS에 보수 명세서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보수는 의정활동비 150만원, 월정수당 325만원을 포함해서 475만원. 연봉 5700만원 수준이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부담금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공개된 의정비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적다는 의견부터 하는 일에 비해 과하다는 지적까지 제각각 엇갈렸다. 의정비에 대해 불편한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밥값 못하는 도의원들이 많다는 최근 도민정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본다.

 

6월 말 도의회 개원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김태석 도의회 의장은 '지난 1년은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다'고 깜짝 고백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의회 개원과 함께 터진 신화역사공원 하수처리 행정사무조사 무산, 국제관함식 반대결의안 자진철회, 제2공항 공론조사 요구 등 현안에 도의회는 사분오열했다. 오죽했으면 도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을 두고 '당론 없는 게 당론'이라는 질타까지 받았겠는가.

 

이런 와중에 모 도의원은 표결명단을 공개한 동료의원 페이스북에 욕설을 올려 구설수를 자초했고, 추석 전날 상임위 별로 해외 연수를 떠나면서 도민 원성을 샀다. 최근 보전지역관리조례 개정안 상정 보류, 카지노 조례 개정안 심사 보류만 해도 무책임하게 찬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도의회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분명 도의회가 젊어진 것은 맞는데, 현안마다 내부 조율은 고사하고 의욕만 앞선 나머지 헛발질만 해대고 있는 형국이다. 정작 서민들이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어야 할 도의회 본연의 직분을 다 못하고 있다는 싸늘한 평가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요즘 대학 교수나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공부하지 않는 도의원들을 문제로 지적한다. 물론 일부 의견이겠지만,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도의회 스스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도의회는 지난 한해 의원 입법 조례 발의건수가 146건으로 역대 최다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도의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면 자치법규 입법 평가 조례에 따라 명칭 변경이나, 자구 수정만 해서 발의된 조례가 20%가 넘는다. 심지어 이미 타 지역에서 시행중인 조례를 차용해 온 것부터, 지역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조례도 상당수다. 
 
그동안 조례 발의건수가 많으면 왕성한 의정활동을 보여주는 지표처럼 인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조례 발의건수가 급증했다고 의원 역량이 강화된 것으로 자화자찬 할일이 못된다. 중요한 것은 계량적 발의건수와 실적 쌓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도민이 공감할 수 있는 조례발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11개 도의원 연구모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두서넛 차례 포럼이나 특강 자료집이 올라와 있는 게 고작이다. 의원 간의 심도 있는 토론은 고사하고,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상태여서 의원 역량강화나 창의적 입법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도의회에는 정책자문위원과 정책연구실에 다수의 박사급 전문 인력이 포진해있다. 수적으로 제주연구원과 맞먹는다. 그러나 제주연구원이 지속적으로 지역 현안에 대한 연구와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비해 도의회는 의원 지원 기능에 매몰된 나머지 집행부 대응 논리와 방어기제만을 생산하는데 급급하다. 아까운 고급 전문 인력을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만으로 위안 삼기에는 남은 3년은 길다. 도민들은 대립과 교착의 정치, 불능과 불통의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집행부의 일방향적 소통 방식만 탓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존재 이유를 찾고, 진정 밥값 하는 의회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김명범 행정학박사 / 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 논설위원

 

http://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0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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