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인 홍석천이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자신의 카페 두 곳을 폐업하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된 적 있다. 한때 경리단길은 거리 자체가 브랜드였을 정도로 핫 플레이스의 대명사였다. 청년 창업자들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넘쳐났고, 호주머니 가벼운 예술가들의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방송,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고 몰려든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를 일으키면서 가파르고 후미진 남산자락 뒷골목을 거대 상권으로 성장시켰다. 전국에 경리단길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한 ○○리단길이 우후죽순 생겨날 정도였다.
그랬던 경리단길 명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위기의 원인은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폭등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원주민이 먼저 이탈했다. 상인들은 임대료가 저렴한 인근 해방촌으로 옮겨가 새 둥지를 틀었다. 빈 점포가 늘어난 만큼 맵시 있고, 개성 넘치던 거리의 활력은 자취를 감췄다. 서울 곳곳에 생긴 경리단길과 비슷한 복제 거리가 많이 생긴 것도 쇠락을 부추겼다. 망원동, 연남동, 익산동은 경리단길을 대체하는 핫 플레이스로 새롭게 부상 중이다.
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합리적이란 자신의 이익 극대화와 손실 최소화를 목표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합리적 경제인은 말하자면 이기적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종종 죄수의 딜레마나 공유지의 비극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자신의 처지에서는 합리적 행위가 전체로 보면 가장 불합리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근시안적 행위는 자기 파괴적 행위로 귀결되기도 한다. 상권의 발전과 쇠퇴는 반복적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럽지 않지만 어찌 보면 경리단길 흥망의 사이클은 제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제주는 오버 투어리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버 투어리즘은 한 마디로 관광객 과잉 현상이다. 2013년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열었다. 불과 3년 만인 2016년 관광객 1500만명을 돌파했다. 관광객들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부동산 지가상승, 교통체증, 쓰레기, 상·하수도 문제 등 사회경제적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영국 공영방송 BBC가 페루 마추픽추, 태국 마야만, 이탈리아 친퀘테레 등과 함께 제주도를 오버 투어리즘 관광지로 지목했을까. 관광객 수용력에 대한 철두철미한 진단 없이 양적 성장에만 치중하면서 사회·문화적 파장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동 목축장에 무제한으로 소를 방목해서 불모지를 만드는 것과 진배없다.
제주도는 전적으로 관광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때문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개발이라면 삶의 질이 심각하게 침해당하지 않는다면 불편은 이해하고 넘어가는 풍토가 다분했다. 제2공항 건설사업만 해도 그렇다. 그간의 의혹 해명도 없이 국토부가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착수하자마자 도정은 화답하듯 담화문 발표와 함께 추진 속도를 내고 있다. 명분은 미래 항공수요의 탄력적 대응과 지역 경제 활성화다. 수용 가능한 관광객 총량을 도민적 공감대와 합의로 먼저 정하고, 설치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지금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적절하게 밟지 못한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후회는 한순간이다.
경리단길 사례처럼 본래 관광객은 이기적이다. 가성비가 현격히 떨어지거나 매력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면 언제든지 스마트폰 속 스크랩해둔 제2의 제주가 될 만한 대체 관광지를 찾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최근 공급과잉으로 휴·폐업이 속출하는 등 패닉 상태에 빠진 도내 숙박업계 현실만 봐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제 포스트 제주를 준비하고, 장기적 비전을 새롭게 그려야 할 때다. 더 이상 자기파괴적 제주개발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공공적 가치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궤도 수정이 절실하다. 도정의 창발(創發)을 당부한다.
김명범행정학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논설위원
2019.02.26 18:53
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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